카테고리 없음

아내와 함께한 설악산 산행

섬돌 2017. 6. 14. 20:57

일    시 : 2017.06.08 09:30분 ~  2017.06.09 14:30

장    소 : 한계령 - 한계령 삼거리 - 끝청 - 중청대피소(1박) - 대청봉 - 중청 - 희운각대피소 - 천불동계곡 - 양폭대피소 -

             비선대 - 신흥사입구 - 소공원


 6:40   아침에 눈을 뜨니 빗방울이 부슬부슬 창문을 두드린다.

 심란한 마음으로 배낭을 둘러메고 문밖을 나서는데, 오늘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09:15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해서 차량이동업체에게 키를 넘겨주고 식당에 들러 간단한 산채비빔밥 도시락을 하나 주문하고 출발을 서둘렀다.

09:40 드디어 60년만에 처음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에 오른다는 벅찬 마음과 흐린 하늘이 자꾸 마음을 짓누른다.

조금전까지 세찬 빗줄기로 산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는 이동차량 기사님의 말씀에....... 

일기예보만 믿고 비옷도 제대로 챙겨오지 자신이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그래도 마음이 들떠있는 아내를 앞세워 출발!


시작부터 깍이지른 계단을 밟고 열심히 오르는 아내를 따라 오른다.


10:40 추위와 비에 대비해 완벽하게 준비한 아내의 옷차림과는 비교될만큼 엉성한 조끼 하나를 걸쳐 입고 출발을 서두른다

환하게 웃는 아내의 표정은 많이 상기되어 있는 듯하다.

곧게 뻗은 주목나무 사이로 한계령 건너 편 힘차게 솟구쳐 오른 뾰족한 산봉우리들!

장대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눈을 돌려 빼꼼이 열린 나뭇가지 사이로 기세등등한 산세를 바라보니 오히려 힘이 솟구치는 것 같다.

온통 푸른 숲길을 따라 오르는 산행!



푸르른 나무와 맑은 공기.....

나뭇가지에 작은 산새들이 내려앉아 예쁜 노랫소리로 우릴 반긴다.


곱고 맑게 웃어주는 하얀 물참대 꽃송이들과 마주칠때면 잠시 쉬었다 가야만 한다.

영롱한 미소를 어찌 뿌리칠 수 있으랴.....


깍아지른 산등성을 타고 오르다보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구슬땀을 식히기 위해  잠시 허리를 편다.

그럴때면 눈앞에 펼쳐지는 한폭의 산그림들이 내마음을 몽땅 훔쳐가 버린다.

어느 한곳에 눈을 둘 수가 없다.

온통 때묻지 않은 스머프들이 살 것만 같은 숲속!

어느것 하나 잘 났다고 우쭐대지도 않고........ 못났다고 왕따시기키도 않는 평화로운 숨소리와 따뜻한 눈빛만이 공존하는

푸른 나라.


철부지 다람쥐는 발밑까지 다가와 무엇이 신기한지 연신 내 얼굴을 올려다 보곤 손을 모은다.

산새들도 부지런히 좌우로 고개를 기웃대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듯 하다.

11:40 한계령 삼거리를 지나 우린 대청봉으로 방향을 잡고 또 산행을 시작했다.


가는 발걸음마다 큰앵초 보랏빛 꽃들도 여기저기 고운 자태로 살포시 눈인사를 보낸다.

현호색꽃들도 고운 눈길로 용기를 심어준다.




고맙게도 우리가 내딛는 길마다 파랗게 하늘이 열리고......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며 설악의 구석구석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가물었던 대지를 촉촉히 적셔 준 빗줄기에 나무들은 온통 물기를 머금고 푸른 신록을 뽐내고 있다.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은 채 민낯으로 반겨줘도 그 모습 그대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상쾌한 바람이 넘실대며 날아든다.

갓 목욕하고 발가벗은 채 온몸을 살짝 보여주곤 수줍은 듯 이내 안개속으로 몸을 감추어버리는 나체의 설악!

풋풋한 향기가 진솔스러워서 좋다.


수령을 알 수 없는 주목이 기긴 세월을 이고 지나는 산객을 맞이한다.

비바람도 이겨내고....

한겨울 추위도 이겨내고...

홀로 외로움도 이겨내며....

묵묵히 서서 이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준다.

생열귀 나무에는 빨간 꽃망울이 금새라도  붉은 입술을 방긋이 웃어 보일 것만 같다.

비탈진 산길을 돌아 내려서면.....


가파른 절벽 바위들의 비경을 지나쳐 왔다는 아쉬움에 자꾸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산아래로는 아스라이 보이는 한계령 고랑들이 인연의 실타래처럼 멈춘 듯 이어지며 동해로 이어져있다. 


조금 더 걸어 마가목 하얀 꽃그늘아래 금마타리꽃 소담스럽게 피어 오르는 아담한 바윗길에 잠시 쉬며 점심을 먹기로 했다.


12:40

여기저기 다람쥐들과 산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숨바꼭질도 해 가며......

아내가 만든 맛있는 약식을 나누어 먹으며......

우린 한참을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손위에 올려놓은 맛난 먹이를 쪼아먹곤 금새 나뭇가지로 자리를 옮겨 또다른 친구를 불러모아온 산새들이며.....

다람쥐 가족들과의 점심식사는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듯 싶다.

이젠 숲속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갈길을 재촉해야만 한다.

발걸음이 늦은 아내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다.

서두르다보면 놓치고 가는 것들이 많지만........

쉬엄쉬엄 가는 길에는 작은 돌무덤하나......풀섶에 앙증맞은 예쁜 꽃들의 수다도 다 엿보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여기는 이제 막 철쭉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기온이 낮은 탓에 아직 봄기운이 가득하다.

묵묵히 걸음을 떼어 놓는 아내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쉬엄쉬엄 좌우의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설악산의 비경들을 비천한 솜씨로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사진 한장 너머 마음에 담아 둔 퍼즐들을

난 가끔 맞추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걸어 온 길도 기억에 담아두고 싶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물안개로 보이지 않던 용화장성의 빼어난 경관이 발아래 그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정토인 용화세계를 가져다 놓아서 용화장성이 되었을까? 

그저 바라만 봐도 부처를 이룰 것 같은 신성한 기운이 가득하다.


14:00  이제 막 우린 한계령을 시작으로 중간지점에 다다랗다.


 발아래 붉은 병꽃 무리들이 함초롬이 피어있다.

가는 길마다 곳곳에 붉은 병꽃들이 무리지어 숲을 자주빛 향기를 보태고 있다.


14:40 아젠 가야할 길이 멀지가 않다.

풀 섶에 숨어 핀 하얀 지장보살 꽃에서는 "지장보살, 지장보살~~" 염불 소리가 땅밑으로 흐르는 듯 하다.

지하세계 모든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고서야 부처를 이루겠다는 '지장보살'의 발원을 이 꽃은 알고 있는걸까?

키작은 나뭇가지 아래 숨어 핀 하얀 꽃 - 지장보살꽃

반짝반짝 시공을 넘는 기도가 온 산 가득 .......내 마음에도 가득.

지옥중생의 마음에도 밝고 환희에 찬 웃음꽃으로 광명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새순이 피어나는 가지마다에도.......

죽은 나목까지도......

보여지는 모든 것들에게 생기가 가득해 보인다.


보아라!

여기 아직도 오롯이 피어나는 연분홍 진달레 꽃을~~~~

죽어도 죽지 않는 산 - 설악이 여기저기 태동하는 것을!



15:40 끝청에서 내려다본 용화장성의 모습은 좀전의 모습과 또 다른 형상으로 나를 불러 세운다.

하늘도 구름도 아까 본 그 하늘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들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

마음따라 달리 보여주는 수많은 모습에서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걸까?


<마가목>

아! 드디어 대청봉이 보인다.

이 산길만 돌아서면 중청 대피소이다.

뒤따라 오던 산객이 고성지역에 비라람을 동반한 15mm/sec이상의 폭풍이 불고 있다는 긴급재난 문자가 왔다며 서둘러 앞서나갔다.


16:40 그러나 우린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오던 발걸음대로 쉬엄쉬엄 중청대피소로 내려섰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대피소 지붕을 먹어 삼킬 듯 천둥 벼락이 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폭풍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금새 천지는 요동치고 어둠으로 가득했으며......

아직 갈길이 먼 등산객들이 하나 둘 대피소로 모여들었다.


우린 대피소 내로 들어가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은 아내의 맛난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소주한잔을 곁들여서......

아침은 파김치와 엊그제 담근 배추김치를 곁들인 북어국으로 해장을 했다. 

05:02 해돋는 시각

새벽 4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고 대피소 밖을 나와보았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어제 저녁 언제 그런 폭풍우가 몰아쳤느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부지런히 동해의 해돋이를 보기위해 대청봉에 올랐다.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붉은 불기둥! - 동해의 햇살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모두들 손을 모은다.

갑자기 숙연해지는 대청봉의 인파들......

또 새로운 하루의 사작점에서 우린 작은 염원을 담아 손을 모았으리라~~~


대청봉을 내려오면서 곱게 퍼지는 햇살이 너무 아륻다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카메라에는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중청대피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빼어난 설악의 진면목을 차마 그냥지나칠 수는 없었다.


06:40 우리는 중청을 지나 소청봉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희운각 대피소를 거쳐 설악동 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야 한다.


멀리 화채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칠성봉과 권금성이 바라다 보인다.


아래로 내려 설수록 신선대의 기기묘묘한 바위산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선명히 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침묵가운데 웅장한 울림의 기운이 바위산을 감싸고 있는 듯 하다.


사방이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명산을 이루는데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이제껏 어디를 다니다 이제야 시큰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찾게 되었는지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함박꽃 나무에도 하얀 꽃망울이 달렸다.

금마타리꽃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제각각 기암절벽마다에 산안개가 걷히자 험준산령의 도도한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수천년 풍상 속에 오늘의 자태로 설악을 지키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숲 속의 모든 정령들을 흔들어 깨워 함께 즐기고 싶다.

잔잔한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구름이 모아졌다 스러진다.

내 생에 상상하지 못했던 풍광에 놀랐고.......

바람소리 새소리 물솔리 작은 울림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나를 주체하지 못하 정도였다.



희운각대피소를 지나쳐 천불동 계곡을 내려섰다.

맑은 물소리에 저절로 이끌려 우린 그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고 잠시 모든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이 시간만큼은 더이상 무엇을 바랄게 있겠는가!

욕심없이 지금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오늘 우리가 함께 느끼고 감사했던 마음들을 잊지말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예쁘게 살아가자.

행복은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함께 웃으니 얼마나 좋으냐!

함께 걸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함께할 수 있는 시간만큼 서로에게 멋진 인연으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귀면암>




천불동 수천 바위들이 부처님을 닮아서 천불동이라고 하였을까?

생김생김은 달라도 부처의 마음은 하나인것을........

너와 내가 없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

여기에 머물다보니 불국토가 다름이 없음을 알 듯 싶다.


천불동 계곡에서 귀면암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서는 곳곳마다 나를 붙잡는 눈길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산아래까지 내려서는데는 산을 오를 때 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뒤돌아 보고 또 보고........

난 사랑에 빠졌나 보다. 설악산에


다음에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의 우리 인연은 여기서 맺어야 할 것 같다.

Don't forget me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