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 전화라도..... 어효첨의 아들이자 어변갑의 손자인 문정공 어세겸에 대한 일화이다. 그는 평상시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성품으로, 재상으로 있을 때 아버님이 타계하셨다. 성종은 그가 연로하므로 상중이긴 하나 고기를 먹으라고 명하였다. 그가 손님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고기를 먹자, 사람들이 적잖이 흉을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11.10.14
에효~~~ 조선조 성종 때 문신 손비장은 젊은 시절 생원시를 보러갔는데, 급제자들의 방이 나붙게 되었는데, 얼굴을 찌뿌리며 “ 방에 내 이름이 없네.” 그러자 그이 친구가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기 몇째 줄에 있는 것이 자네 이름이라네.” 손비장이 말하였다. “저건 손비장이 아니라 사비장일세.” 손(孫..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10.01.13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할지..... 명종 때 대사헌 조사수와 영의정 심연원이 함께 경연에 참석하였다. 조사수가 임금에게 아뢰기를 " 영상 심연원은 첩에게 집을 지어 주었아온데, 극도로 크고 사치스러우며, 붉은 색까지 칠하여 격식에 맞지 않사옵니다." 이에 심연원은 절을 올리며, " 조사수의 말은 신의 잘못을 바로 맞추었습니다."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9.06.10
볼품없는 자태에도 조선조 문종 때 채소권은 성품이 웬만한 일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 너그럽고 소탈하였으며, 대게 의관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어느날 한 발에는 흰고무신을 다른 한쪽엔 검은 고무신을 신고 가니, 아전들이 입을 가리고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퇴청하는 길에 판서로 있던 김안로를 찾아가니, 그가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9.04.24
심약한 자신을 되짚어 보며... 조선 인조 때 춘성군 남이웅은 성품이 굳세고 과감하였다.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요술로 많은 사람을 홀리는 무당이 있어 사헌부로 잡아 들였다. 장차 처벌을 하려고 하는데, 그 무당이 요술을 부려 남이웅이 앉아 있는 의자를 흔들자 주변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 두려워하여 얼굴이 흑빛으로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9.02.19
엊그제 살 던 집이.... 정숙 옹주는 선조의 딸이자 동야위 신익성의 아내이다. 그녀는 자기집이 너무 좁은 것이 못마땅하여 임금께 아뢰었다 "이웃집이 너무 가까이 있어 말소리가 들리고, 처마가 얕아 안이 들여다보이니 바라옵건대, 그집을 샀으면 하옵니다." 선조가 말하였다. "말소리는 낮추면 들리지 않을 것이요, 처마..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9.01.30
문자를 모르면서도.. 평성부원군 신경진은 무인으로 평소에 한자를 몰랐으나 시 짓기를 좋아했다. 일찍이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지었으나 그 대구(對句)를 짓지 못하여 한스러웠다. 木木槐木淸風多 목목괴목청풍다 나무나무 느티나무 시원한 바람이 솔솔부네. 어떤 선비가 대구를 지었는데, 이는 신경진을 희롱한 것이다..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7.25
장수의 비결 조선조 인조 때 문신이었던 판서 심액은 나이가 팔순이 넘었는데, 혼인한 지 60년이 지났고 과거에 급제한 지도 60년이 지났다. 맏아들 심광수는 승지, 둘째 심광사는 전적 벼슬 - 손자 7명 가운데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고, 안팎의 자손이 모두 70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로 화수계를 조식하여 각기 회갑..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2.01
자리이타의 마음으로 조선조 인조 때의 문신인 완평부원군 이원익에 대한 얘기이다. 그는 무술년과 기해년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두 번 모두 극구 사양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왕이 그를 어엿비 여겨, 드디어 그를 특별히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으며 말하였다. " 나는 아직 이조판서 벼슬을 마다하는 사람을 보지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1.22
내 어찌 그걸 알겠느냐? 옛날 어떤 도사가 교생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백발의 교생이 『사략』첫 권을 끼고 들어와서 천황씨 대목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도사가 마음속으로 교생을 업신여겨 강의에서 낙제시키려고 물었다. "자네는 천황씨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가?" "도사께서는 이 고을 곽좌수 아버지의 이름을 아십니까?..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