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양녕군(讓寧君) 제(禔)는 비록 덕을 잃어 세자가 되지 못하였으나, 만년에 능히 때를 따라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 세조께서 제에게 묻기를, “나의 위무(威武)가 한고조(유방)에 비해서 어떠하냐.” 하니, “전하께서 비록 위무하시나 반드시 선비의 갓에다가 오줌을 누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고..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10.03.12
경훈이를 생각하며... 형조참판을 지낸 박이창은 상주사람으로, 젊었을 때 성격이 활달하여 얽매이는 데가 없었다. 일찍이 승지가 되어 왕의 행차를 모시고 가는데, 길가의 수많은 아낙들이 임금의 행차를 보려고 장막을 치고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아리따운 처녀하나가 손으로 발을 걷고 얼굴을 반쯤 내보이고 있었..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9.03.03
첫눈이 오기전에 정유년에 유구국왕(오키나와왕)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왔으므로 성종께서 경회루 밑에서 접견하였더니, 사신이 퇴관하여 통사(通事)에게 말하기를, “내가 귀국에 와서 세 가지 장한 것을 보았소.” 하였다. 통사가 그 까닭을 물으나, 사신이 말하기를, “경회루 돌기둥에 종횡으로 그림을 새겨서 날으..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10.23
자식농사도... 꿩이 아름답기로는 북쪽의 것이 최고이다. 지금은 평안도 강변(江邊)의 ‘꿩을 진상하는데, 그 크기가 집오리만하고 기름 엉긴 것이 호박과 같아서, 겨울이 되면 이것을 잡아서 진상하니 이를 고치(膏雉)라 한다. 그 맛이 아주 좋고 북쪽으로부터 남으로 가면 꿩이 점점 여위어 호남, 영남의 남쪽 변방..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8.27
조용히 살고 지고.. 진(陳)과 고(高) 두 중국 사신이 남기고 간 시집을 황화집(皇華集)이라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이 모여 앉아서 이를 읊조리고 칭찬하니, 상사(上舍) 유정손(柳正孫)이 옆에 있다 가 말하기를, “이 시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므로 우리 할아버지 참판공이 좋아하여 보시었다.” 하거늘, 자리에 있던 사람들..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6.26
너 돌은 어느 때 돌인가. 양양에서 남쪽으로 몇 리 떨어진 곳의 길가에 돌이 서 있는데 항간에서 전하기를, “옛날에 한 암행어사가 고을 기생을 몹시 사랑하다가 이별하게 되자 시를 지어 돌에 새기기를, ‘너 돌은 어느 때 돌인가. 나는 금세의 사람이로다. 이별의 괴로움을 모르고 홀로 서서 몇 번이나 봄을 지내었던고.’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8.04.25
마음의 여유 태종이 일찍이 선시(扇詩:부채에 쓴 시)를 지어 이르기를, “풍탑(風榻:바람이는 벤취)에 의지했을 때는 밝은 달을 생각하고, 월헌(月軒:달이 보이는 정자)에 읊조리는 곳에는 맑은 바람을 생각하도다. 대를 깎아 단선(團扇:둥근 부채)을 이룸으로써부터 명월청풍이 손바닥 속에 있도다.” 하였다. 옛날..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7.12.24
예나 지금이나... 옛날에 신입자(新入者)를 제재한 것은 호사(豪土)의 기를 꺾고 상하의 구별을 엄격히 하여 규칙에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바치는 물품이 물고기면 용(龍)이라 하고, 닭이면 봉(鳳)이라 하였으며, 술은 청주이면 성(聖) 이라하며, 탁주이면 현(賢)이라 하여 그 수량도 한이 있었다. 처음으로 관직에 나가..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7.11.21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참판 이자야(李子野)가 일찍이 명경(明京)에 갔을 때, 어떤 서장관(書狀官)이 시내에 나갔다가 사창문 속에서, 수를 놓고 있는 미인에게 눈을 돌려 쳐다보았더니, 미인이 창을 열고 물을 뿌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 참판이 이 소문을 듣고 시를 짓기를, “하수(河水)의 다리 가에 버들가지 나는데 춘색을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7.11.03
공부는 억지로 안돼 *** 벌과 딱지풀 *** 세종이 종친을 가르치는 종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처음 개설하고 종친들을 모아 글을 읽혔다. 순평군은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나 일자무식으로 글자를 알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효경』을 읽을 때 관리가 ' 개종명의장제일(開宗名義章第一)이라는 일곱글자를 가르쳤는데 순평군은 .. 온고지신-나를 돌아보며 200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