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장나무 **
서평군 문정공 한계희는 영의정 한상경의 손자이고, 유항 한수의 증손이며, 서평부원군 한계미의
아우 이고,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6촌 아우이다.
온 집안이 부귀가 혁혁하였으나, 그는 청렴함을 지켜 집안이 가난하여 아침저녁으로 나물과 거친
밥으로 연명하였다.
하루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집에 집안모임이 열려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 서평군 한계희가 너무 연세가 높은데도 집안이 가난하니, 어찌 대책을 생각해 보지 않겠소"
한명회가 답하기를,
" 이는 내 책임일세."
하고는 종이와 붓을 준비시켜, 문중의 모든 친척이름을 차례로 쓴 다음 - 청렴하고 간소하게 살아가
는 덕에 대하여 기술하고 문중이 그를 받들지 못한 잘못이 커 이에 변변치 못하지만 마음을 모은 것
이니 받아달라고 부탁하며 흥인문 밖 북바위 아래에 있는 논 열 섬지기를 바쳤다.
한계희는 굳이 사양하여 받지 않자, 한명회 이하 문중 모든이가 연달아 일어나 절을하며 한결같이
찬양하여 중지할 기세가 보이지 않자, 비로소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모든이가 일어나 춤을 추고, 밤이 깊어서야 취한 몸을 부축하여 돌아갔다.
가히 한 집안의 충실하고 순후한 풍조라고 하겠다.
<< 寄齋雜記 , 기재잡기 >>
조선의 개국공신 한명회가 그의 친척아우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머리를 숙일 수 있었다는데
대해 그의 성품 또한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점점 핵가족화되어가는 요즘, 나아가 우리자식들에게 문중이며, 친척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리지나
않을런지.....
고모도 이모도 삼촌도 없는 혈혈단신들의 세상에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갈지.....
그래도, 예전에 이리 청렴하게 살아도 거들어줄 친인척이 있었고, 훈훈한 인정이 살아 있었기에 살만한
세상이었다.
여보게!
아무리 바쁘고 힘든 세상이지만 가끔 틈내어 동생들도 챙겨보고 주위도 돌아보며 사는 여유를 갖어
보게나.
나 아프고 힘들다고 고개 숙이고 살아간 들 어찌 잊고 살겠는가.
아무리 가까이 섞여 살아도 어릴 적 한솥밥먹으며 희노애락을 함께 한 가족이 때론 보고프고 그리워
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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