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大猷 김굉필)는 소학(小學)의 가르침으로써 몸을 다스리고, 옛 성인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후진(後進)을 불러 가르쳐 정성껏 쇄소(灑掃:물뿌리고 비로 씀)의 예(禮)를 지켰는데,
육례(六禮)를 닦는 학자들이 그의 앞뒤에 가득하였으므로 그를 비방하는 소리가 비등(沸騰)하니
백욱(伯勗)이 권하여 말렸으나 -
대유는 듣지 않고 남에게 말하기를,
“스님[僧] 육행(陸行)이 불교를 가르치는데, 업(業)을 닦는 제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 벗이 그만두라고 말리면서, ‘화를 업을 것이 두렵다.’ 하니,
육행스님이 말씀하시길,
‘먼저 안 사람이 뒤늦게 안 사람을 깨우치고, 먼저 도를 깨달은 사람이 뒤늦게 깨달은 사람을
깨우치는 법이니,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알릴뿐이요, 화복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내가 어찌
관여하겠는가.’ 하였다고 하니, 육행은 스님이라서 취할 것은 없으나, 그의 말은 지극히
공명하다.” 하였다.
<< 秋江冷話 , 추강냉화 >>
남의 사사로운 말에 좌우되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신 대유나 육행스님의 말 속에 기품이 살아
있음을 알수 있다.
간사한 이는 사소한 바람에도 떨며 흔들리니만,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없이 제 길을 간다.
여보게!
깨닫지 못하였거든 앞서 깨달은 이를 본받아 열심히 닦아보게나.
선행을 행하지 못하였거든 앞서 실행에 옮기는 이들을 보고 따라 배우시게나.
이도 저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앞으로 얼마나 더 안고 가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