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옹(雪翁)이란 중이 자칭 김시습(金時習)의 문인에게 배웠다 하여 조금 시 지을 줄을 알고
또 운명[命]을 말할 줄 알았다.
당나라 태사(廣太史)가 왔을 때에 설옹이 시를 지어 보산관(寶山館)에 바쳤는데, 그 뜻에는
중국사신(詔使:조사)이 반드시 그 시를 기이하게 여기어 불러 보려니 하였다.
태사가 보고 원영사(遠迎使) 용재(容齋) 이공(李公)에게 보내기를,
“아랫것들이 이 작문을 내게 보이는데, 나는 그 가르친 말을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용재(容齋) 이공(李公)이 그 일로 아뢰니 명하여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어 먼 곳에 귀양을 보냈다.
태사가 당나라 본토로 돌아가서 시를 지어 보내어 이르기를,
“천흥사(天興寺)란 절이 산 가운데 있는데
우연히 중을 만나 다르고 같음을 말한다.
화옥(花玉)의 삼생(三生)은 어찌 얼어나고 멸하는가.
성원(性原)의 두 글자는 다만 진(眞)과 공(空)이로다.
구름을 움직이는 석장(錫杖)은 이사인(泥沙印)이요,
달을 마치는 인연(因緣)은 두뇌옹(頭腦翁)이로다.
홀로 연기와 놀이 있어 옛 물건을 의지하니,
보리(菩提)의 가지와 잎이 서쪽과 동쪽으로 흩어진다.”
하였는데 불경을 많이 구사(驅使)하여서 알 수가 없다.
<< 稗官雜記, 패관잡기 >>
우매한 눈으로 읽고 또 읽어도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선문답 같은 글이다.
불교의 사상인 진(眞)과 공(空)에 대한 이름이나 깨달음의 경지 보리를 이르는데, 어찌 당나라
사신인들 헤아렸으랴.
여보게!
큰스님의 석장에서 찾겠는가.... 달에서 찾겠는가.....
마치 달마가 동쪽으로 간 뜻을 어이 범부의 눈으로 가름하려 하는가.
다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시기였기에 큰 스님을 알아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였음
이리라.
모든게 힘들고 어려운 요즘에 눈푸른 스님이라도 많이 나와 푸른 숲의 청량한 바람내음처럼
맑고 시원한 법음으로 막힌 속이라도 뻥 뚫어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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