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睿宗)이 처음 집정하여 뜻을 모아 다스리기를 도모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옥체(玉體)가
점점 위태하였는데,
일찍이 손수 책 등에 쓰기를 모두「예종」이라 하셨고, 또 이르기를,
“죽어서 이 시호(諡號)를 얻으면 만족하겠다.” 하였는데,
몇 달이 안 되어서 예종이 승하하여 군신들이 시호를 예종으로 올렸으니, 과연 성의(聖意)에 부합
하였다. 아, 슬프도다.
<< 筆苑雜記 第一券, 필원잡기 >>
예종의 재위기간은 정확하게 1년2개월 - 현덕왕후(단종 어머니) 는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
에게 저주를 내려 그의 자식들이 단명하게 하였다고 하는 야사가 있다.
그러나,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에는 '효성이 지극하여 세조의 병 수발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 돌아가신 후에도 슬픔에 젖어 물한모금 마실 수 없었으매 건강을 해쳐 돌아가셨다'고
기술 되어있으며, 그의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틈날 때 마다 역대 정치의 잘잘못을 관찰한
<<역대세기>>를 편찬하였을 뿐만아니라, 그 외에 많은 치적들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예종이 죽어서 시호를 睿=叡(슬기예)를 써서 예종으로 해 달라고 했다함은 죽음앞에서도
만 백성을 위해 슬기롭게 정사를 베푼 임금으로 남고 싶었음이리라.
대통령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요즘에 20세에 단명하였지만, 나라의 변방을 굳건히 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만 백성을 평안케 하려고 했던 예종의 의지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아름다운 정치구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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