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승정원에서 있던 일이다.
모든 승지들은 도승지를 공경하여 감히 농담을 하지 못하였으며, 만약 도승지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벌로 잔치를 베풀어야만 하게 되어 있었다.
홍섬이 일찌기 이름난 기생 유희와 정을 통하였는데, 당시 송씨 성을 가진이도 유희
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홍섬이 도승지가 되었을 때, 도부승지에 이준이 되었는데.....
그 무렵 송생이 죽자, 홍섬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 송생은 나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 났는데 이제 죽다니...
어찌 사람의 잘 잘못이 같지 않은고?"
그말을 듣고 있던 이준경이 말하였다.
" 도승지공께서는 유희를 사랑하였는데, 송새도 또한 유희를 사랑했습니다. 이는
다만 타고난 명이 같을 뿐 아니라 행한 일도 같았습니다."
그러자 여러 승지들이 놀라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이에 무례한 말을 한 벌로 이준경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게 하였는데, 무려 일곱
차례나 베푼 뒤에 끝났다.
벌 잔치를 끝 마친 이준경이 말하였다.
" 비록 우리집 가산이 다 기울여 잔치를 벌이게 해서 파산이 되더라도, 말을 꺼내는
것이 그리 좋은데 말을 하지 않고 어찌 배기겠는가?"
<< 於于野談, 어우야담 >>
옛 선조들도 직책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말 장난 하기를 즐겨 했던 모양이다.
요즘으로는 차관급의 동부승지인 이준경이 오죽했으면 집안이 파산되더라도 말을 하고
싶어 했을까!
하물며 친구를 만나 말을 나눔에 있어 격식을 갖추고, 조심 조심 하다보면 어찌 속내를
알겠으며, 서로의 장단점을 높여주고 덮어 줄 수 있으랴.
친구여!
술에 취해 혹여 실수를 하였거든 껄껄 웃어 넘기는 아량으로 덮어 주소.
말을 하다 칭찬할 얘기를 들었거든 손뼉치며 함께 즐거워 해 주소.
속에 담아 병이 될 이야기 있거든 몰래 나 불러 얘기 해 보오.
아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하지 않소.
남은 인생 서로 덮어주고 다독이며 어우렁 더우렁 살아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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