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동면에서 깨어난 푸르름이 양지바른 언덕에서부터 고개를 내밀고, 꽃샘바람은 진달래
가지마다 봄을 잉태하고 있었다.
간절한 기다림으로 눈이 튀어나온 목각장승부터 - 윙크하며 애원하는 장승과 집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목이 되어버린 장승을 보면서 보고픈 친구들을 향한 우리의 바램을 여기에 깎아
세운 듯........
함께하지 못한 많은 친구들의 그리움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도 2009년 축령산 시산재의 아침은 겨우내 움츠렸던 친구 어부인들의 많은 동참으로
화기애애하게 설렘과 웃음꽃으로 싱그럽게 산을 박차고 오른다.
울창한 송림사이 산막 옆으로 행사장소로 데크를 빌려 행사준비에 바쁜 집행부를 뒤로한
채, 땅의 정기를 온몸으로 들이며 가쁜 숨으로 토해내며 오르는 산행!
어제저녁 과음으로 처음부터 후미에서 벅벅 기며 오르는 원장군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군기든 신병처럼 곧게 줄지어선 오름길을 조금 지나자 심술궂은 고참병들의 장난기처럼
울퉁불퉁 꼬불꼬불 산등성이 허리를 꼽추세우고 있다.
황대장이 노란두건을 쓰고 앞장서서 정상으로 기수를 잡는다.
유난히도 키가 큰 그가 앞장서니 설렁설렁 떼어놓는 걸음마다 뱁새 가랑이 찢어지고
숨이 가쁘다.
(그래도 난 같은 ‘수’라인이라고 쬐꼼 봐주는 듯하다...^^* // 참고로 용두팔에도 ‘수’자
돌림 이름가진 친구는 약간의 거시기(?)있으니 부러우면 이름 바꿔 부러~)
깔딱깔딱 넘어가는 숨을 돌이켜 세우니 여기가 바로 깔딱 바위에서 군기를 잡고 선
그의 위풍이 대단하기만 하다.
몇몇 친구가 그의 눈총을 벗어나 샛길로 빠져 앞서 오르니 저 앞 수리바위의 위용에
한풀 꺾인 소소리바람의 심술이 골짜기를 타고 꽁지를 감춘다.
드디어 수리바위에 오르니, 마치 정상에 오른 듯 뿌듯해 하는 친구들의 표정!
(얘들아!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야......ㅋ ㅋ )
봄??? -어디에 봄이 왔는가???
화사한 웃음은 흰 눈이 덮인 비탈을 올라서는 순간 얼어붙기 시작했고, 미끄러져 넘어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웃음 반! 걱정 반! - 엉금엉금 서로를 의지하고 시시덕거리며 오르는
산행길에 여기저기 웃음들이 떼구르르 눈 덩이 되어 산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중에도 주(酒)님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길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친구들이 허겁지겁 그 뒤를 따르고.......
얼마를 앞서 달렸을까?
찬정의 배낭에서 잘 익은 막걸리 두 통이 꺼내어지고, 기수의 배낭에서 멸치와
홍어말림(?) 그리고 마늘쫑과 고추장으로 구색을 맞추어 술잔을 돌린다.
허걱~~
몇 명이 마시기도 전에 후미가 따라붙고 채 반잔도 마시지 못한 채 입맛만 다시고
고추장에 마늘쫑만 축내고 다시 오르는 축령산!
그래도 마신 넘은 행복해서 웃고.......
못 마신 분은 아쉬움에 한숨 내 쉬며 눈밭을 오른다.
산길에도 눈이오니 엉금엉금 거북이 산행이 되어 지체가 말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오른 남이바위에서 용두팔의 기백을 마음껏 보여주고픈 용사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깍아지른 절벽아래를 바라보니 현기증이 난다.
“에공~ 더는 못 간다....날 업고 가 줘~~.”(빙국의 한숨이 땅에 꺼지고.....)
엊그제 다녀온 일본 다이센이나 축령산이나 힘들기는 똑같다며 푸념을 쏟아낸다.
나도 남이장군이 앉았던 바위에 앉아 원대한 꿈을 품지는 못했어도 잠시 시름은 내려
놓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 - 칼바위를 지나는데 여인네의 잘록한 허리처럼
군더더기 없는 산세가 너무 예뻐 잠시 한눈을 판다.
사내의 마음을 붙들어 놓기에 손색없이 미끈한 산허리에 넋을 놓은 채 걷다보니 어느덧
여인네의 쇄골부분처럼 움푹 패인 곳도 지나고 하얀 목덜미부분도 더듬대며 돌아서니
환하게 눈길 가득히 웃고 선 친구들이 반기는 헬기장에 다다랐다.
점심시간을 넘긴 일행들에게 배낭의 먹거리를 내려놓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창덕이 복분자주에 혼을 빼앗긴 상현이 우선 앞자리에 한잔을 챙겨 놓고, 눈 깜박할
사이에 동이 나버린 술병!
빈병만 덩그마니 주인에게 되돌려가고, 뒤이어 슬그머니 상해의 고량주를 내놓는 재혁!
오늘 산행을 보니 상해에서 와서 그런지 부부의 몸이 몹시도 상해있었다.
차고 매서웠지만 끝자락엔 봄이 묻어나 맑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 바람을 먹고, 다음
산행에는 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해주길 기원해 본다.(장난인 것 알쥐~~)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고량주를 따라 자리를 옮겨 술잔도 받고, 점심공양까지 톡톡히
한턱을 얻어먹었다.
예의 앞서간 장원이와 세봉이는 정상에서 애타게 우릴 부를 뿐~~~
(공비는 언제나 배고프고 고달프다.......섬돌의 말씀)
시산제 시간이 늦어져 서리산까지 가기로 했던 산꾼팀도 축령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하기로 했다.
김밥하나로 간식을 해결한 두 공비도 기다려주고....
다같이 축령산 정상에서 용두팔 시산제 산행의 기쁨을 담아보았다.
복분자주에 건강을 되찾은 재혁내외, 첫 산행에 함께한 엄살쟁이 창덕내외!
그 좋아하는 술 한 잔을 산행에서는 절대로 먹지 않고 모범을 보인 왕방산 산악회
총무 지영이와 복분자주로 쌍꺼풀 수술이 잘 마무리 된 상현이 그리고 영원한 용두팔
의 마당쇠 장원이도 담았으니 이젠 하산이다.
어휴~~
오르막길도 힘들었는데......
내리막길 - 아이젠도 준비없이 온 많은 친구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에 가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손에 손잡고........
눈길을 내려오는 친구들의 모습은 건강하고 짓궂은 웃음들로 가득하다.
엉덩방아를 찧을라치면 두 손 꼭 잡아주면 챙겨주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도 눈에 든다.
먼저 내려간 친구들은 저 아래에서 친구들의 안전하산을 기원하며 기다려준다.
끈끈한 동료애도 맞볼 수 있음이다.
이제 조금 살아났는지.......
하루종일 엄살부리며 투정부리던 창연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장원이 그 뒤를 따라 잣나무 숲길로 내려선다.
거대한 잣나무 숲 속을 지나니 다시 봄 길이 열리고.......
얼음이 녹아내리며 많아진 계곡의 물소리가 봄을 재촉한다.
친구들은 잠시 오늘 산행의 피곤을 내려놓고 탁족을 즐기기도 했다.(나도 따라 잠깐..)
이젠 시산제만 남았다.
성권의 인사말로 시작한 시산제는 축문과 선서 등으로 이어지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끝으로 축령산의 주인이신 산신께 각자의 소망과 산악회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절을
올렸다.
33회 후배님들도 많이들 함께해 준 오늘의 시산제!
정작 시산제는 시작되었는데, 카메라 건전지가 허기진 듯 시름시름하며 작동을 멈춘다.
그래도 남양주에 사는 동기들의 푸짐한 음식장만과 늘 뒤에서 보이지 않는 뒷바라지로
땀 흘리며 고생해 주는 제만이 있어 고맙고 즐겁기만 하다.
끝으로, 내가 처음 산악회를 찾았던 초심을 생각해 보며.......
친구여! 누구나...
-섬돌-
우린 텅 빈 가슴으로 왔어요.
사는 동안 많은 걸 담아왔죠.
처음 본 당신
나처럼
가득히 그리움 안고 왔었죠?
서먹한 마음으로
한밤중 두 눈 크게 뜬 올빼미 눈처럼
두리번거리며 찾는 옛 추억 하나 .
갓 피어난 봄꽃처럼
해맑은 웃음.
분명 그때는 행복을 담았었지요.
주고받는 술잔마다에 맑은 영혼도 담았다가
마음 저 밑 둥의 고독도 불러 내보고
상처 난 영혼도 담아 주었었구요.
그래요. 우린 친구란 이름으로 하나였기에
조용히 내 상처 기워주던 따뜻한 맘.
그땐 분명 사랑 가득한 가슴이었어요.
예전 그대로 텅 빈 가슴으로 달려오세요.
비운만큼 기쁨가득 담아줄게요.
오늘의 내 마음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다음 산행에서는 보다 많은 친구들의 웃는 모습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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