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남기기(친구)

서울성곽(혜화문-창의문)

섬돌 2009. 6. 21. 12:00

 일   시: 2009년6월20일(토) 비

 누구와: 목우재(자원봉사단체) 법우18명과 함께

 빼곡이 들어선 삘딩숲을 비켜선 곳!

 긴 목 쭉 내밀고 우뚝이 서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혜화문(홍화문=동소문=동대문과 숙정문 사이의 문)!

 

 실타래를 풀어내듯 과거로의 여행을 출발합니다. 

 성벽을 타고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처럼 아직도 수줍음 타며 돌 틈사이로

몇백년을 살부비며 살아온 푸른 이끼가 아직도 낯을 가립니다.

 한켠으로는 울창한 조릿대가 바람에 서걱대며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며......

 얽힌 실타래처럼 엉키고 끊어진 성벽들의 상처를 따라 성북동을 오릅니다. 

  이제 막 인생의 고갯길에 들어 선 듯 힘은 들지만 함께 할 벗이 있어 고단하지만은 않은  산행.

  비에 젖은 숲에는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더위에 지쳤던 유월의 꽃들도 달콤한 빗물로 화장을 한 듯 색들이 더욱 곱고 활기차 보이네요.

 

 솔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 마다에 솔향이 뚝 뚝 묻어나 사방엔 향기로 가득합니다.

 굳이 피톤치드의 내음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숲사이로 뿌연 하늘과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온 숲이 행복에 겨워 아우성입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반짝이는 풀섶 길을 따라 고개내민 가지마다 손인사도 나누고.....

 개망초 꽃들에게도 눈인사도 보냅니다.

 그리곤 때묻지 않은 그 길을 따라 그 속에 동화대어 쭈~욱 함께 소근대며 빠져듭니다.

 말머리 휴게소를 지나 숙정문(서울의 북문)에 다다랗습니다. 

 숙정문에 오르는 쪽문을 통하여 올라온 그 길을 더듬어 봅니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오른 그 길은 내 인생의 추억처럼 또 저만큼 뒤켠으로 멀어져가는

아름다운 내 삶의 한조각처럼 벌써 그리움이 되어버립니다.

 죽어 생명은 없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나목!

 아름답게 살다간 자취겠거니.......

 마음이 아립니다.

 어릴적 초가집 처마끝으로 흘러내리던 빗줄기를 보곤........

 어쩜 수십년만에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빗줄기 였습니다.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것도 아닌데....

 삶을 너무 팍팍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해 보며,

 하늘과 비와 소나무 그리고 꿈꾸듯 일어나는 숲에서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낍니다 .

 오늘은 빗 속에  가려 치에서 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북한산의 자태를 함께 나눌 수도 없었고......

 찬란한 태양과 쪽빛 하늘을 담아 줄 수도 없었고....

 백악산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서울도 다 나눠들릴 수 없었기에.....

 예전 아내와 함께 했던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이미 빗방울은 폭우 수준입니다.

 물안개 자욱한 서울 성벽을 이렇듯 호젓이 걸어 볼 수 있음도 나름 행복입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는 길.

 목우재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오히려 더욱 좋았습니다.

 빗 속을 걷는 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센티멘탈해 질 수 있는데....... 

 성벽 위 돌이끼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밤꽃 내음에 한참 정신을 놓습니다.

 탁한 기침 내뱉으며 오염된 도심속에서 살고 있지만, 가끔은 고개들어 하늘도 바라보고......

 때론 고개돌려 늘 푸르고 싱그럽게 웃어주는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가져야겠습니다.

 쭉 이어진 저 성벽을 따라 왔고......남은 이길을 따라 또 가야만 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이어져 오늘의 역사가 있듯이.....

 우리의 삶도 과거를 따라 오늘이 있고.

 

 오늘을 어떻게 가꾸어 가느냐에 따라 내일을 볼 수 있음도 배웁니다.

 

 성벽은 끊겼지만.......

 마치 둥근 원은 시작도 끝도 하나이듯, 우리의 삶도 막연히 원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운 인연의 시작!

 다시 그곳에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