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權近)은 고려 말년의 이름난 대부(大夫)이다.
그가 죄를 입은 것은 하나는 목은(牧隱, 이색) 때문이고, 하나는 도은(陶隱, 이숭인) 때문이니, 진실로 당시에 그가 유배(流配)당하는 것을 편안히 여겼다면 그 문장과 명론(名論)이 어찌 두 공(公)만 못했으리요.
그러나 계룡송(鷄龍頌) 한 편으로 갑자기 개국(開國)의 총신(寵臣)이 되었으니, 슬프도다! 그가 항복한 뒤에도 벼슬이 삼사(三司)에 지나지 못했고, 나이는 육순(六旬)도 도리지 못했으니 얻은 것이 적었다. 그때 권근을 기롱하는 시(詩)가 있었으니,
대낮에 양촌이 의리를 말하고 있으니 / 白晝陽村談義理 (백서양촌담의리)
세간에 어느 대인들 어진 이가 없으리 / 世間何代更無賢(세간하대경무현)
하였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오직 그 자손들이 계승하여 조정에 벼슬하는 이가 끊어지지 않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전보다 낫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양촌(陽村) 양촌”하며 마치 덕행(德行)이 있었던 것처럼 하니, 심하도다. 그 이름을 도둑질함이......
<< 大東野乘, 象村雜錄 , 대동야승 상촌잡록 >>
고려 말 조선 초 개국공신 권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의 호가 양촌(陽村)이었기에 후에 신흠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보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쳐 절개와 의리를 지킨 이는 후세에 충신으로 받들여지고 있으나, 변절을 한 이들의 말로는 두고 두고 그 흠을 지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덕행으로 포장하려 해도, 눈과 귀와 입이 있는 한 허물을 덮을 수 없음을 또 배우게 된다.
목숨앞에 재력과 권력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슬픈 인간이여!
양지바른 언덕에 봄 나물이 돋아나듯, 자네의 푸른 싹은 언제나 볼 수 있으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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