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친구)

천보산 산행 및 회암사 사찰순례

섬돌 2009. 4. 21. 17:30

 일시:2009년 4월18일 (토) 맑음

 장소:천보산 회암사

 인원:정경자, 황창영, 박동성, 김주선, 하경훈, 이은순, 정영수, 강미경, 허현도,김미홍

         진광희, 정승수 (이상12명)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계사에서 만나 그곳을 향하는 마음들은 지하철안에서도 이미 조용한 떨림으로

소근대며 들떠있었다.

 덕정역에서 전철은 우리를 그곳에 토해내 버리고 제 갈길로 떠나버렸다.

 우린 광장에 앉아 몇몇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는데, 78번 마을버스가

저만큼에서 쪼로록 달려와 우리 앞에 서며 어서 타기를 재촉한다.


 회암사지 입구!

 내리면서 제일먼저 눈에 띄는 선술집-에궁 잿밥에만 정신이 팔렸구랴...... _()_


 다리를 건너 회암사로 오르는데, 주목나무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우릴 맞아주고

흥부네 박 열리듯 애틋한 산 아래 서민들의 소망을 담아 올라가는 연등들의 모습

이 서로의 마음을 묶어 바른길을 열어 보이고자 하는 듯하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니, 조선시대 최대 사찰이었으며 동방에서도 제일 큰 절이었던

회암사지 터가 휑하니 마음을 아리게 한다.


 고려말 인도의 고승 지공으로부터 나옹선사 와 무학대사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건국이념이었던 숭유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태조 이성계와 효령대군 등이 기거

할 만큼 왕실의 비호를 받아 3000여 승려가 생활하였으며, 126칸의 건물과

높이15척의 불상7구와 10척의관음상을 모신 대가람의 형체는 오간데 없고,

넓은 공터에 안타까운 자취만 봄볕에 졸고 있다.

그곳을 뒤로하고 오르다 보니 산 벚꽃 하얗게 만개한 도랑을 따라 조팝나무도

흐드러지게 피어 객을 반기고, 하늘 가득히 반짝이는 햇살들이 쏟아져 내려 온

산엔 생기가 반질반질하다.


  절이 있는 골짜기라고 하여 절골이라는 곳에서 회암사 약수터로 오르는 길을

택한 일행을 앞세우고 회암사지 부도탑에 올라 반배를 올리고 부리나케 그들을

쫓아 오르다보니 금새 산중턱에 다다랐다.

 여린 새순들이 봄볕에 그을릴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연분홍

수줍음으로 눈웃음치며 사랑 가득히 흐르는 진달래꽃 숲을 지나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이 산위에 걸렸다.

 

 앞장선 황창영이 정경자법우님에게 머지않은 정상을 가리키며 숲을 휘저어

정상에 오르고, 뒤이어 오르는 경훈이 아내와 동료를 독려하면서 따라 오른다.

 저 멀리 허현도법우 내외는 모습도 가물가물~~~

 제일 걱정했던 정경자 법우님의 산타는 솜씨는 가히 산꾼에 가깝다.

 

드디어 천보산 정상!

 풀과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져 온산이 순한 봄내음으로 가득하고, 산 나그네의

마음도 산을 닮아 넉넉해지는 듯 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파란 마음이 되었다가.......

 푸른 숲을 바라보면 푸른 마음이 되고,

 예쁜 꽃들을 바라보면 마음도 따라 예뻐지는 봄산에 서 있으니 어찌 마음이

너그럽지 아니할까?


눈도 따라 선해져 모두가 선남선녀가 되었구나.


 어느덧, 12시가 넘어서고 주린 배들을 달래려 좋은 장소를 물색하다보니, 주위가

온통 진달래 숲으로 드리워져있고, 커다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어 아늑한

쉼터를 찾아 둘러앉으니, 산들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땀을 식혀준다.


 오늘 산행약속에 아픈 아내가 함께하진 못했지만 일찍부터 일어나 정성껏 만들어 준

계란말이와 오이소박이, 그리고 과메기안주에 다른 법우님들이 싸온 각종 반찬들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정상주로 내어놓은 포천막걸리와 청 두꺼비 두 마리가 오감을 자극하며

목젖을 타고 내려 구석구석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홍조 띈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번진다.

 적당한 알콜은 가끔 가슴 밑둥에 움크리고 있는 진솔함도 불러내고, 변덕스런 마음에

평안과 용기도 실어준다.

 우리들의 풀풀날리는 수다들이 이 꽃 저 꽃에 내려앉아 다함께 엿들어 보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간 산 너머로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한참동안 배낭을 베개삼아 낮잠도 즐기다가 해가 중천을 넘어 회암사 앞마당에 닿을

즈음 모두들 산중턱 바위에서 오늘의 추억을 담고 부지런히 하산을 시작했다.

 천보산은 멀리서 보기엔 아담하지만 속내는 무척이나 거칠고 가팔라서 산객들에게는

몹시 까칠하다.

 그래도 숲길 가까이에 숨겨둔 예쁜 풀꽃이며 오롯이 솟아오른 암벽들이 여성적인 듯

남성미가 물씬한 정감 넘치는 산이기도 하다.


  스니커즈를 신은 미홍법우를 어우르며 더듬더듬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현도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회암사에 내려섰는데, 이미 향성스님이 원두막처럼 새로 지으신 평상에 다기와 수박을 준비해 놓고 우릴 반긴다.

 오랜만에 뵈었는데도 늘 수줍으신 듯 맑은 미소, 따듯한 눈길로 한결같이 편안히 대해

주심에 고맙기 그지없다.

 이 기다림 때문에 아침부터 그렇게 마음이 설레었는가 보다.

 잠시 용서를 구하고, 자리를 비워 대웅전에 올라 백팔배를 올리고 산신각을 들러 내려오니 이미 수박은 죽은 시체만 나뒹굴 뿐.........

그래도 스님 손수 내려주시는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분별심을 삭히우고,

뒤이어 우롱차로 마음을 정갈히 해 주심에 잠시 잡념을 잊어 행복했다.

  아름드리 금강송들이 신장님처럼 버티고서 절집을 호위하고 고승들의 부도와

석등들이 사문의 뼈대를 일러주는 기품있는 절

 비오는 날이면 문득 달려가고픈 고향집 툇마루처럼 편안한 집.

 그곳에 손주를 맞이하는 할아버지처럼 늘 인자한 웃음으로 반겨줄 것 같은

스님이 있어 좋은 곳.

 언젠가 총각무 뽑아가라고 불러주실 것 같은 회암사의 풋풋한 그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한참을 쉬고 헤어지려는데 아쉬움이 남는지 절 아래까지 마중 나오시는 스님께서는

끝내 처사님차로 일행을 덕정역까지 태워주셨다.


 덕정역 쉼터에서 남은 음식과 곡차로 오늘을 모두 마무리하기위해 둘러앉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꾸밈없이 웃고 까불며 행복을 열어가서 좋은 사람들! 

 풀러도 풀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처럼 아름다운 인연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법우들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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